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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회랑의 특별한 목적 하나 'il portico come elemento ordinatore'

건축 속으로/건축 이론

by Andrea. 2020. 5. 1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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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29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조르지오 그라시(G.Grassi)가 자신의 대표작 키에티 학생 기숙사 프로젝트에서 입면의 회랑 채택 이유에 대한 근거를 프리드리히 웨인 브레너(F.Weinbrenner)의 회랑에서 찾기 때문인데 회랑의 목적 중 하나를 이해하여 적합한 곳에 적용하기 위함이다.

그라시의 회랑(좌), F.Weinbrenner의 회랑(우)

본인이 좋아하고 공부해오는 이탈리아의 그라시(G.Grassi)나 모네스티롤리(A.Monestiroli)의 건물에서 이런 열주가 반복 되는 회랑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 외에도 이탈리아 파시즘 시대의 합리주의 건축가들의 건물에서는 매번 빠지지 않고 채택되는 요소이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 고대 건축, 로마 건축에서도 쓰였던 회랑.
몇 페이지에 걸친 논문을 쓰고도 남을 주제이나 이번 포스트에서 회랑의 여러 목적 중 한가지를 간단하게나마 정리해보고자 한다.

모네스티롤리의 양로원

오늘날 회랑을 적용한다면 건축적인 관점에서 보다더 명확한 건물의 형태 완성을 위해, 가로의 폭을 줄여 밀도감을 높이기 위해, 통합적인 입면을 위해, 테라스와 같은 자연을 바라보고 머무는 장소의 건설을 위해 등등 여러가지 목적들이 있을 것이다.

본인의 설계반에서는 첫 학기가 지나고 지도 교수의 건축관을 이해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어느 날부터 자신들의 모든 건물에 회랑을 적용한 디자인을 갑자기 가지고 오던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당시에 보다 못한 교수님은 왜 아무 의미없이 갔다두냐며 역정을 내던 장면이 선하다. 당시에 회랑에 대해 설명을 듣게 되었는데 그 중 il portico come elemento ordinatore라는 개념에 대해 오늘은 얘기하려고 한다.

'il portico come elemento ordinatore' 라는 말이 있다. 우선 이 말의 의미를 이해가 필요하다. 직역하면 '질서 부여자? 혹은 질서 생산자?로서의 회랑'이라는 말이다.

솰츠만(Salzmann-Stolberg)의 운터 덴 린덴(Unter den Linden)거리를 위한 1925년 설계 경기 출품안

elemento ordinatore로서의 회랑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는 책("Berlino anni Venti. Progetti urbani per il centro", Caja Michele)이 있어 그 일부분을 옮겨온다.

"형태에 대한 몇가지 중요 쟁점 중 하나는 건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도시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한 도로가 도시의 중심 가로로 변형되기에 적합한 방식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회랑의 특성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되고 통합하는 목적으로, 아치들과 기둥들이 연속적으로 놓이는 것을 말한다. 베른(Bern)이나 뮌스터(Munster)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들은 건축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도시의 가로수들이 없는 곳에서 어떤 특정한 의도를 들어내고 있다. 혹은 오늘날의 베를린의 린덴 거리(Linden)의 경우, 더 이상 가로의 성격이 도시의 중심 요소로서의 역할을 구실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가 되겠다."

시뇨리 광장(Piazza della Signoria)

"이런 회랑이 도시의 가로를 도시의 핵심 요체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는 순기능에 대해 옹호하는 헤게만(W.Hegemann)은 이러한 회랑 시스템이 그 뒷공간을 어둡게해 도시 가로의 다양한 입면을 그 뒤로 감춘다는 부정적인 다수의 선입견에 반대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회랑을 필수적으로 두던 시대가 있었는데 상당히 많은 북부 도시의 가로들에 특별한 아름다움을 제공하였다. 실제로는 각 장소에 어울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으나 적어도 이탈리아에서는 그것들을 아주 적합한 것들이였다.'

이런 당대의 논쟁으로 훌륭했던 수많은 회랑들이 제거되었고, 런던의 내쉬(Nash)의 보행자길을 회랑으로 덮었던 옛 리젠트가(The Quadrant, Regent Street)프로젝트에서도 같은 이유로 제거되버리는 운명을 맞았다.(이 프로젝트에서는 회랑의 공기의 순환과 차양이라는 기술적인 문제를 잘 고려되지 않고 적용되었기 때문이였다)"

1800년대 초 리젠트가(The Quadrant, Regent Street)

"19세기 말에 아르누보라는 운동의 붐과 함께 당대의 새로운 상업용 건물은 입면이 유리로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베를린의 라이프지거 광장(Leipziger Platz)에 있는 베르트하임 백화점(Wertheim Department store)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들의 중세적인 외관은 8각형의 바로크 스타일의 광장 형태와 강한 대조를 보이며 놓여졌다."

베르트하임 백화점(Wertheim Department store) (좌), 1928년의 라이프지거 광장(Leipziger Platz) (우)

 

"프리드리히 웨인브레너(F.Weinbrenner)은 지붕의 다락을 가진 주거 건물들의 변형을 위해 보다 근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다락을 가진 주거 건물들은 도시의 중심 가로에게 있어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였고, 그래서 제네바(Geneva)시의 도시 중심 도로나 그외 여러 도시에서 증명되었던 것처럼 3개층의 높이에 해당하는 회랑으로 정면들을 덮는다.

도로의 폭이 너무 넓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던 가로들을 여러 아름다운 가로들 중 하나로 탈바꿈 시키겠다는 의지였다. 아마 그의 시대에 유럽에서는 유일한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는 그 디자인이 자신의 시대에 매우 특별하고 유례없는 도시의 입면을 선사하는데에 거대한 공사나 큰 변형작업 없이 하나의 입면으로 통합시킴으로서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리고 동시대에 수많은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 막대한 투자없이 집들을 지을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하였다. 2개 층의 집들은 한 개층을 더 높이도록 고안되었고, 불규칙한 입면들은 회랑으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그 회랑 아래는 보행로가 된다."

프리드리히 웨인브레너(F.Weinbrenner)의 넓은 가로를 위한 회랑

가로가 있고 가로에 면한 건물들이 있다. 가로의 형태는 면한 건물에 의해 완성된다. 위에서 살펴본 몇가지 역사의 사례는 도시에서 보통의 가로보다 보다더 중요한 도시 인자로서의 도로의 계획을 위해 건축의 형태가 어떤 방식으로 변형될 수 있는지에 대한 건축가들의 연구의 결과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회랑은 여러 목적으로 건물에 놓여질 수 있다.
오늘 분명히 확인한 것은 도로의 형태를 구성하는 각 건축물들이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도시라는 보다 넓은 관점에서 부분이 전체로 통합될 수 있는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이고, 그중 하나의 해법이 가로에 놓이는 연속적인 회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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