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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대담] 안토니오 모네스티롤리에게 묻는 33가지 질문-20,21,22,23번째

건축 속으로/건축 이론

by Andrea. 2020. 4. 1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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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시리즈는 Antonio Monestiroli(이하 AM)의 말년에 Federica Visconti(이하 FV), Renato Capozzi(이하 RC)와 있었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된 대담을 엮은 것입니다. 그들의 치열한 문답은 한 건축가의 개인적 건축철학에 대한 응변을 넘어 현대건축을 향한 날카로운 각성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RC:

계속해서 건축가의 권능(내지 권한)에 대해,

fabrica e ratiocinatio(기술,건축술과 건축이론이란 의미의 라틴어)에 대해 얘기해보죠.

이점에 대해 당신은 "이론의 필요성"이란 작은 논문을 쓰셨지요? 

이론과 건축작업 사이의 관계는 정말 필수적이라 하셨지요?

FV:

카를로스 마르티 아리스(Carlos Marti Aris) 역시 '(아치를 위한)임시 지지대와 아치'에

비유하며 이 관계에 대해 참 많은 얘기를 했었지요.

AM:

무엇보다도 카를로스는 이론이란 것은 한번 작품으로 완성되어지고 나면 더이상 필요치 않다 라고 말했습니다.

'(아치를 위한)임시지지대' 처럼 사용후 사라져버린다고 했지요.

진실대로 말하자면, 오늘날 '이론'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당신들 생각에는 마지막 이론서를 말하기 위해서 어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르네상스 이후의 세를리오(Serlio)? 1700년대의 밀리찌아(Milizia), 로돌리(Carlo Lodoli)까지 오게 됩니다.

허나 우리는 이미 학교에서 배웠습니다. 1900년대에 크고 작은 이론서들이 있었지요.

예를들어 꼬르뷔제의 <<건축을 향햐여>>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건축이론서라 부를만한 이론은 더이상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이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게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알도 로시(Aldo Rossi)의

<<도시의 건축>> 정도가 이론서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저는 사실 교과/교리/학문(disciplina)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앞서 사용한 것처럼 말이에요.

'교과/교리/학문(disciplina)과 방법'. 이론이란 것은 기존의 다른 이론과 다르기만 해도 되거든요.

반면, '방법'이란 것도 수정 보완의 잠재력을 품고 있지요. 앞으로도 교정되고 첨가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두지요. 저는 '방법' 이 없이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더군요.

 

다른이들은 주관적인 범주이자, 감정적인 설계 범주의 공간설계에 상당히 많은 애를 씁니다.

그들은 '프로세스의 (이성적,논리적)합리성(razionalita')'에는 별 신뢰를 두지 않고,

오로지 (새로운)발명품에만 관심을 둡니다. 

 

'방법'을 원하는 자들만의 단독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 또한 위험가능성이

있는 접근법이며-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혼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확신성을 부여할 수 있는 접근법이라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죄인처럼 취급받지요. 

저는 '방법'없이는 작업 할 수 없습니다. 물론 '방법' 없다고 하여 절대적으로 설계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RC:

잠깐 '이론'에 대한 논의로 이야기가 흘러 갔었는데요. 그 전에 얘기 나누던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책임에

대해 다시 돌아가보죠. 건축의 공공적 측면의 책임이란 인간 공동체와 관련한 문제이고,

'테마'를 규명하고, 인간 집단을 배경으로 삶는 건축을 통해 스스로 인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오늘날, 여전히 '인간 공동체(collettivita')'을 얘기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것이 시민성, 공동체라는 것을 지각하는 것을 얘기하는데 무슨 가치가 있을까요?

AM:

잘 모르겠네요. 그 문제는 늘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극장이라는 테마에 대해 생각해볼까요?

저에겐 참 경험이 풍부한 테마 중 하니입니다. 만약 극장을 설계해야 한다면,

사람들이 극장이라고 생각하는게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무슨 앙케이트 조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은 참여함으로써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어떤 하나의 시스템인 것이죠. 그러나 제 생각에는 하나의 무책임한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권능(자격,의무)가 존재하지 않다는 걸 동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 '위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건축가는 테마에 대해 자신의 집적된 생각을 믿고 그것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내놓아야 합니다.

무슨 이야기냐하면, 원한다면 경험에 근거하여 그것을 작업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한번 이탈리아의 대단한 극장들을 떠올려봅시다. 모든 도시에는 그 중에서도

북중부 지역에 에밀리아나 롬바르디아 주를 한번 보지요.

이곳의 극장들은 매우 사람들의 모여들었고 그들을 탄복시켰습니다. 그곳을 지나드는 사람들은 그것들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떤 추상적인 이데아가 아닙니다.

그것은 늘 강하게 표상된 그들의 고유의 형태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존재하는 한 집단의 고유의 가치, 진정한 가치를 해석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테마'에 대해 생각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집 하나를 설계 해야만할 땐 그 집에 가서 거주할 사람만을 절대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 집이 모두(집단의 가치)에게 좋은 집이되어야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RC:

(그 집단의) '정주(定住) 문화'를 위한 것이여야죠!

AM:

당연하죠! 집단의 총체인 하나의 정주 문화를 위한 것이여야 합니다. 그것은 해석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테마'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의 테마는 그 집단의 정신에 부합한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건축가라 함은 이 정신을 해석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건축가 및 건축이론가와의 일대일 인터뷰를 모아만든 Clean scarl사의 SAPER CREDERE IN ARCHITETTURA 시리즈의 43번째 권 'trentatrè domande a Antonio MONESTIROLI'를 번역한 것입니다. 다소 오역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적사항 및 오역이 있을 경우, 누구든지 소중한 의견 남겨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추후 발견되는 오역은 계속해서 정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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