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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유학와 건축공부를 하며

건축 속으로/건축 단상

by Andrea. 2020. 4. 20.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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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1

 

내가 건축을 거의 모르던 건축학과 입문 시기에 내가 본 미스의 건물들은 검은색 철에 유리를 끼운 단순한 형태를 반복한 건축이였다. 당시에 내가 알던 건축의 지식은 일반인과 차이가 없었고, 조형을 보는 눈 아니 지금은 형태를 보는 눈이라 표현해야 함을 안다. 형태를 보는 눈은 곧바로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외관의 독창성 정도에서 파악하는 수준이였다. 그 선에서밖에 판단할 줄 모른다는 것은 그래도 본 것들은 있었으니 독창적인지 아닌지는 판단했던거 아닌가?라고 보기도 어려울 정도로 거의 무지했다. 평범한 일반인의 조형 세계에 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남들과는 다른 뛰어난 조형 이해 능력을 가진 것도 아니였다. 그렇게 첫 미스의 건축과의 만남은 내게 왜 이 건축가가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중 한 명으로 뽑히는가라는 의구심만 남겨주었다.

 

이런 미숙하고 사적인 얘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런 나의 경험이 보통 미스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의 갖는 경험과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건축학교에 들어가서 미스에 대해 가르치는 선생님도(적어도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없었고, 언급하는 선생님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니 미스의 건축 세계를 학생들이 접하게 되는 경로는 매우 지엽적인 정보들을 통해서였고, 그런 경로를 통하다보니 미스를 이해함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왜곡되거나 본질보다는 지엽적인 것에 그치는 부분들만 이해하고 넘어가게 되더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아는 것들을 모르던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적어도 미스가 건축에서 그가 다다르고자 했던 해답들이 무엇과 관련한 것들인지 조금만 이해했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해하고 아는 세계는 조금 더 넓지 않았을까?하는 후회스런 마음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서구권 건축 유학이 도움이 되는 것 중 하나는, 확실히 그들에겐 오랫동안 잘 보존되어온 문헌자료들과 그것들에 대한 풍부한 연구들이다. 이것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실이다. 한국의 건축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건축공부를 위한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작고 역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학교는 건축으로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학교라 불렸음에도 도서관을 떠올려 보면, 내가 지금 유학을 하며 공부 중인 서적들, 그것에 동의하건 안하건 오랜 세기동안 건축을 배우기 위해선 한번쯤 일독해야할 책들이 있지 않거나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한국 건축가들의 개개인의 각양각색 작업 프로세스나 인문학적 건축관에 대한 책들은 인터넷 서점가 기술/공학 분야 베스트 셀러를 채우기 일쑤이고, 그 베스트 셀러들이 당연한 듯 건축학교 도서관 대출 서적 집계 상귀권을 차지했다. (며칠 전 교보문고 사이트를 들어가보니 4년 전인가 베스트셀러였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가 아직도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책이 어떻다는게 아니라 그 순위에 변동이 없다는 사실이 놀아웠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 이미 건축학사를 5년 씩이나 다녔음에도 이제 그것들을 섭렵하자니 시간도 부족할 뿐더러, 급하게 소화하는라 체할 것을 걱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스는 쉰켈에서 깊은 영감을 얻고 건축을 공부해 나갔다. 그렇게 모두가 존경하는 건축가가 믿고 공부했다면 우리도 한번 관심을 가져 볼법도 한데, 당시에 쉰켈 주의, 신고전주의 같은 역사의 한 사조로써만 배우고 넘어갔다. 미스를 얘기했지만 상당히 많이 언급되던 르 꼬르뷔제의 경우는 더했다. 미스의 건축 세계가 내게 알아가야할 오지(奧地)의 세계였다면, 르 꼬르뷔제의 건축 세계는 내게 왜곡되어 받아들이던 오지(誤知)의 세계였다. 내가 그동안 잘못알아온 것을 바꾸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내가 건축가로 살아가던 건축과 학생으로 살아가든지 간에 분명 언제나 내겐 시간은 충분치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듣고 공부하며 평소에 노트하는 것은 다시 들여다보고 고민하기는 여간 쉽지가 않다. 블로그는 그래도 관리가 된다는 전제 하에 늘 현재의 고민에 머무르는 기록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노트는 내가 열어 보지 않으면 책장 속에서 먼지가 쌓이겠지만 이 공간에서는 늘 현재성을 갖는 느낌. 그리고 타인에 의해 교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

 

아무튼 처음 미스를 접했을 때의 의구심은 현재 다시 만나는 미스를 통해 신뢰로 바뀌었다.

모네스티롤리가 미스에 대해, 아돌프 루스가 쉔켈에 대해 했던 '그는 환타지아의 위대한 조절자' 라는 말을 미스에게도 갔다 붙인 것은 참 와닿는다.

 

학생과 논의 중인 미스 반 데 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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